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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자!” 나이 지긋한 여자 근무원들의 호령이 떨어지자, 학생들은 학사모를 쓰고 발걸음을 옮겼다. 걔 중에는 그제서야 헐레벌떡 호텔스쿨의 학부 졸업생임을 상징하는 붉은색의 테슬(Tessel: 학사모를 장식하는 실 꾸러미)을 다는 졸업생들도 있었다. 나는 걸으면서도 전후좌우를 둘러 보었다. 겨울 졸업식(Graduation Recognition Event)때 조기 졸업한 학생들이 꽤 되었는지, 여름 졸업식(Commencement)때 모인 학생들을 얼추 세어 보니 30줄 내외였다. 다시 말해서 편입생을 포함해 230명의 한 학년 학생 중, 40~50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전년 혹은 내년 겨울에 졸업한다는 뜻이었다.

 

아무튼 5월까지 어쩌다 남게 된(?) 180명 남짓의 우리 소수 호텔학교 인원들은 “Lets Go Hotelies!를 연발하며, 거대한 올린 도서관을 끼고 스타틀러 호텔 뒤편에 있는 길로 행진 했다. 우리들은 가면서 몇 번이나 눈시울이 붉어질 수 밖에 없었다. 호텔을 돌아 갈 때 다른 단과대학들과 달리, 거의 대부분의 호텔 학교 교수들과 직원들, 심지어는 스타틀러 호텔에서 일했던 종업원들과 하우스키핑 메이드분들까지 나와서 손을 흔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60명에 달하는 교수들이 소리를 모아 “Go Hotelies!”라고 함성을 질렀을 때는 200명이 채 안되는 호텔경영학과 학생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환호했고, 심지어는 눈물을 흘리며 목청껏 “호텔리스!” 라고 외치는 여학생들이 도처에 무수했다.

 

우리는 스타틀러 홀 바로 뒤에 있는 쉘코프(Schoellkopf) 풋볼 경기장에 도착했다. 호텔학교는 학부로써는 산업노동학교와 미술건축학교에 이은 3번째, 졸업식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지 18분 만에 입장했다. 우리 학과의 배너는 우리 학과에서 가장 총명한 남학생 중 하나였던 니콜라스와 금융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던 중국계 미국인 웬디가 들고 입장했다. 또한 학위 대표 수여자는 숨마 쿰 라우데(Summa Cum Laude: 대학에서 최정상의 영예로, 3.5점 이상의 학점과 A등급의 졸업논문을 받은 학생에게 수여된다)에 빛나는 카림과 다채로운 과외활동을 한 해나로 선정되어 기수였던 니콜라스와 웬디의 뒤를 이었다. 졸업식 시작 후 19 23초가 지났다고 나와 있는 시계 밑 전광판에 약 3초간 내 모습이 등장했고, 나는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25,597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은 절대 가득 메워지기 힘들 것이라 예상했으나, 당시 호텔스쿨의 학장 마이클 존슨(Michael Johnson) 교수님의 어깨를 가로질러 올려다 보이는 관중석은 이미 만석이었고, 심지어는 자리가 모자라서 경기장 안 가장자리까지 졸업생들의 가족들이 빼곡히 들어와 있었다. 학부와 대학원생을 합쳐 무려 5,500명 가량이 졸업했으니, 우리 호텔경영학과 학부생들은 3만 명의 인파 중 엄청난 소수였다. 물론, 우리는 그 기세에 지지 않았다. 호텔학교는 코넬대 단과대학중 건축미술대학을 제외하고 가장 작았지만, 다른 어떤 학교보다도 우리의 열정이 뜨겁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당시 총장이었던 데이비드 스코튼(David J. Skorton) 박사는 연설 이후, 모든 단과 대학을 일일히 호명했는데, 그 때 우리는 마치 짜여진 각본처럼 앉아 있던 의자 위로 올라가 거대한 환호성을 질렀다. 200명도 안 되는 5월의 졸업자들이었지만, 우리의 목소리 만큼은 육군훈련소의 제식군기와 맞먹는 사자후를 구현하였다.

 

우리는 다음으로 고풍스러운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체육관인 바텔(Bartell)홀로 가서 단과대학별 졸업장 수여식(College Reception)에 참석했다. 쉼 없이 계속된 졸업실 일정 탓에 다시금 주린 배는 음식을 들이라 재촉하는 찰나, 성씨 별로 좌석 티켓을 나누어 주는 안내 데스크들에는 다과와 음료가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김씨였기에 한국계 친구들 옆에 주르륵 앉게 되었는데, 우리는 입 안에 음식을 가득 넣은 채로 서로의 졸업을 다시 한번 축하했다.  곧 이어, 힘든 가족 형편을 이겨내고 가족 중에선 처음으로 코넬대학교를 훌륭히 졸업한 브라질 소녀 티파니(Tiffany)의 연설이 시작되었고, 호텔 학교의 졸업식을 찾아온 동문들과 부모님들, 그리고 우리들의 눈방울은 다시금 글썽였다. 7분 남짓한 연설이 고작 70초 가량으로 들릴 만큼 나는 몰입해있어서, 마지막 그녀가 웃으며 우리들에게 함께 있어줘서 고맙고 모두들 졸업을 축하 한다고 했을 때 그녀의 이야기가 대학에서 듣는 마지막 연설이라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으며 졸업이 내심 실감났다.   

 

그리고 우리는 차례대로 앞으로 나가, 존슨 학장과 악수를 하고, 같이 사진을 찍고, 학위 인증서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체육관 밖을 나왔고, 맥그로우 타워 앞으로 향했다. 태양은 여전히 빛났다. 그것를 보지 않으려 횡단보도를 더 빨리 건너고, Cornell Store의 계단을 더욱 빨리 내려가도 햇살은 여전히 내 옆에 다가왔다. 빛나는 태양빛이 내 수료장보다 내 가슴을 더욱 빛나게 했고, 나는 마침내 마음껏 환호했다. 나를 보호해주던 코넬대학교로부터 한 걸음 내딛는다는 것은 더 이상 내게 두려움이 아니었다. 마지막 수업이었던 요트 수업때 까지만 하더라도 코넬이라는 태양이 주는 햇볓 아래 조금만 더 살고 싶다는 미련을 가졌지만, 학위 증명서를 받을 때, 존슨 학장과 악수할 때 만큼은 내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아이비리그에서의 대학 생활이 끝난다는 것에 대해 달콤씁쓸함과 후련함을 동시에 느꼈다. 불과 2주 사이에 애벌레였던 내가 나비로 성장해 날아오를 준비를 마친 걸까?

 

우리 2010년 입학생들 중 누군가는 분명 더 총명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더 업무 경험이 많았다. 누군가는 더 앞선 교육 환경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코넬대학교에 처음 발을 내딛을 때는 우리 모두가 시꺼먼 흑연에 싸인 광물 덩어리들이나 다름 없었다. 호텔경영학교라는 제련소에서 4년간의 성장통을 견뎌온 결과, 비로소 우리는 각자의 찬란한 광택을 지닌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그리고 에메랄드가 된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색의 보석이기에, 몇몇의 미래는 더욱 투명했고, 다른 몇몇의 시야는 남들보다는 조금 불투명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했다. 우린 살아온 날들보다 훨씬 긴 살아갈 날들을 향해 패기의 돛을 달고 항해준비를 마쳤다.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에 나오는 캡틴 잭 스패로우처럼, 우리는 우리 인생의 선장이 되어 쾌속선의 키에 두 손을 올려 두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하늘에는 태양이 우리 항해를 밤낯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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