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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다. 허둥거리다

Real Estate 2016. 6. 4. 03:35

2010 08 16, 나는 얼마나 당돌했나. 얼마나 겁 없이 뉴욕행 비행기를 탔던 걸까? 한국을 떠나기 전날 밤, 나는 두려움보다는 큰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찬 심장의 박동소리 탓에 좀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침대에서 몇 시간이나 자다 깸을 반복하다 아예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새벽 5. 성남시 분당구 인근의 집에 살고 있던 덕택에, 정오에 출발하는 미국행 비행기를 타러 출발하기엔 아직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일단 방에서 나와 현관으로 간 나는 바퀴가 달린 두 개의 거대한 캐리어 가방은 이미 현관 드레스룸에 잘 비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다시 내 방으로 갔다. 그리고 나는 배낭에 여권과 I-20, 육포, 그리고 내 부적과도 같은, 고등학교 3년 내내 들고 다니며 암기하던 3500개의 단어가 수록된 SAT단어장이 잘 들어 있나 재차 확인하였다. 그 후 나는 부억으로 가서 평소 즐기던 사과 주스를 한 컵 준비했다. 그리고 나는 거실로 향했고, 소파에 몸을 맡기고 주스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목 넘김은 밤새 뒤척이느라 누적된 피로를 어느 정도는 잊게 해주었다. 그런데, 거실 반대편에 있던 안방에서 벌써부터 부모님의 인기척이 들렸다. 두 분 또한 숙면을 취하시지 못한 기색이 역력했다.

 

평소 습관대로 집에 있던 덤벨들로 가벼운 아침운동을 마친 나는 샤워를 하고, 어머니께 빌린 마스크팩을 얼굴에 쓰고 침대에 다시 드러누었다. 이내, 부모님들 또한 채비를 마치셨고, 하나 밖에 없는 남동생도 비몽사몽 일어나 샤워실로 향했다. 모두의 준비가 끝나자, 승합차에 시동이 걸렸고 동생과 나는 짐을 들고 로비로 향했다. 2시간 후에 우리는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허기를 이기지 못한 나는 신속하게 발권을 마친 후 지하의 푸드코트로 직행했다. 설렁탕과 도가니탕으로 이루어진 아침식사 앞에 앉아 계시던 부모님의 얼굴에서는 불과 3년 전 나를 경기도 가평의 청심국제고등학교에 두고 떠나실 때의 그 표정이 녹아있었다. 마치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표정과 다름이 없었다.

 

외국에서 학교를 다녀 본 적이 없는 내가 이국땅으로 향하며 어찌 그리도 담담할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소년의 천진함이란, 젊은이의 패기란 참 대단한 것 같다. 어쩌면 근처에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유학생들이 티켓팅을 마치고 출국 심사관으로 향하기 전 그들의 가족들과 떠나는 이 포옹을 하는 풍경을 넋 나간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내게 주님께서는 이미 ‘너와 비슷한 이들이 무수하니 너도 해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계셨는지 모른다.

 

2009 12 12일 오전 8시에 코넬대학교 수시전형 합격을 확인한 내 눈은 모험심으로 가득 찬 가슴을 낳았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아이비리그행 고속열차의 티켓을 무척이나 따내고 싶었다. 따라서 내신성적, 추천서, 그리고 과외활동을 두고 동기들과 이미 치열히 싸운 나에게 대학이란 50m 자유형 종목과 같았다. 나는 이 시합에 출전한 수영선수가 되었고 출국 당일은 마치 스프링보드 위에 서는 것과 같은 심정이었다. 승부욕이 강한 편인 내게 레이스는 언제나 즐거웠으나, 사실 나는 내 멋대로 출발 선상을 정하고 경기 규칙을 전혀 숙지하지 않은 가짜 스포츠맨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다행히 내 머릿 속 한 켠에는 그런 내 패기가 자칫 나에게 패배감을 줄 수 있으리란 불안감이 이미 자리잡고 있었기에 그나마 성숙의 과정이 주는 이질감은 덜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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