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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입생 시절 배정받은 클라라 딕슨은 1946년 지어진 이래 지난 70년간 아이비리그에서 가장 큰 기숙사의 자리를 지켜왔다. 건물이 얼마나 크냐면 건물 끝 방에서 반대편 끝 방까지 가는데만 족히 5분이 걸린다. 이 엄청난 크기 덕택에 무려 469명을 수용할 수 있는데, 개인 사정으로 들어오지 않는 학생들을 제외해도 460명 가량의 학생들이 한 건물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딕슨은 키큰 남학생이 팔을 양쪽으로 벌리면 양 손이 벽과 닿을 정도로 좁은 복도로 악명높다. 그리고 워낙 방이 촘촘히 붙어 있어서 주위에 록 음악을 좋아하거나 이성친구와 잠자리를 자주 가지는 녀석들이 있으면 적응하기 힘들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2000년에 완공된 뮤즈(Mews)2006년 완공된 코트-케이-바우어(Court-Kay-Bauer)에서 살고 싶어서 기숙사 배치 설문에 발악을 했다. 그 이유는 깨끗한 새 건물이었던 고등학교 기숙사에 워낙 익숙했기도 했고, 냉난방이 잘 된다는 점이 정말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룸메이트가 있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나는 되도록이면 혼자 살겠다고 대답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딕슨이 1인실이 많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그 설문 파일을 제출하는 순간 내 운명이 결정되었던 것 같다. 사실 매우 조용하고, 보수적이고, 낮을 심하게 가렸던 내게 딕슨은 처음엔 너무 어수선하게 다가왔다. 저녁 때만 되면 적어도 스무 명의 학생들이 라운지로 나와 가벼운 분위기로 공부를 하곤 했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떠들면서도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를 그렇게 잘 하는지 궁금했다. 나는 원서를 읽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아 혼자 조용한 곳에서 집중하며 읽어야 했었다. 하지만 적어도 중앙 캠퍼스에 있는 도서관에나 가야 조용한 분위기에서 공부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사실 집중도는 포기하고 라운지 끝 테이블에 쳐박혀서 예습 혹은 숙제를 했다.

 

가뜩이나 영어도 못해서 적응하기도 힘들고, 첫 학기에는 노사관계학에서 호텔경영학과로 전과를 해야 해서 높은 학점이 필요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쉽다고 유명한 일본어 과목과 통계학, 조직행동학, 그리고 1학년 세미나만 수강했다. 고작 15학점밖에 되지 않는 과목들이었지만, 나는 거의 매일을 돌아오자 마자 라운지로 직행해서 공부만 해야 했다. 왜냐? 일단 영어가 안되고 호텔학교에 꼭 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얼마나 고지식한지 스스로는 모른채, 기숙사 친구들은 몇 번을 초대해도 도통 같이 파티에 가주지 않는 나를 무척이나 걱정했다. 심지어는 같은 층 여자애들이 나를 파티에 끌고 간 적도 있었다. 물론 남자애들은 자기들이 아무리 가자고 해도 안가더니 여자들이 가자고 하니까 간다고 며칠동안 나를 놀리곤 했지만.

 

사실, 미국이나 스위스에 파티 문화가 장난아니라는 말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익히 들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톱 호텔학교에서도 왜 이렇게 파티 문화가 발달했는지 처음에는 궁금했다. 그러나 막상 친구들과 지내다 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학생들에게 공부를 할 때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할 것을 요구한다. 입시가 급한 고등학교 시절에는 365일 중 하루도 맘 편히 쉴 수가 없다. 교육 문화 자체가 계획을 잘 세워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해야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5일 교육 문화도 아직 정립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토요일에도 수업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 특히 명문 호텔학교가 많은 미국과 스위스에는 금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새벽까지 학생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물론 외국학생들 중에도 꾸준히 공부하는 스타일이 있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주말은 휴식의 개념이지 학습의 연장선이 아니다. 차라리 이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까지 전투적으로 공부를 하고,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저녁은 파티에서 음악에 몸을 맡기고, 맥주와 보드카로 하여금 공부의 지친 머리의 열기를 식힌다. 만약 과제가 많다면 보통 토요일에 일어나 오후까지 열심히 해서 끝낸다, 다 못 끝냈을 경우에만 일요일까지 도서관에 간다.

 

그런데, 만약 나처럼 외국계 호텔학교의 문화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두려워하며 피해야 할까? 아니면 처음에는 힘들더라도 지속적으로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며 극복해 나가야 할까? 정답은 후자다. 물론, 다시 한국에 돌아갔을 경우 죽을 때까지 인맥으로 남는 사람들은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같은 학년에 있는 한국인 유학생 친구들, 혹은 친한 한국인 선후배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커뮤니티에 전혀 참석하지 않고 4년을 보낸다면 나중에 졸업했을 때 자신을 끌고 당겨줄 학연의 끈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외국 아이들보다 한국 아이들과 더 친해지더라도 같이 공부하고, 같이 파티에 가고, 같이 헬스장에 갈 외국인 아이들은 언제나 필요하다.

 

1학년 시절, 나는 한국 아이들과 같이 시도 때도 없이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면서도 저녁에는 꼬박 꼬박 기숙사 같은 층 아이들과 생활하는 방향을 택했다. 물론 나중에는 한국 아이들과 엄청 친하지는 않았던 내가 다른 한국 아이들이 같이 여행도 다니고, 군복무도 같은 시기에 가는 걸 보고 많이 부러웠었다. 하지만 대신 외국아이들, 특히 내 근처에 사는 기숙사 같은 층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고 같이 식당에 다니며 내 영어 실력은 특목고 재학 시절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향상되었다. 특히 내 표현력과 구사력이 가장 많이 발전하게 된 계기는 바로 석식을 먹으며 기다란 테이블 위에 죽치고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전과를 위해 무조건 높은 학점을 받아야 했던 1학년 1학기와 호텔학교에 들어와서 밀린 수업들을 몰아서 들어야 했던 2학기 때는 인터넷 뉴스조차 볼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놀라웠던 사실은 코넬대학교 아이들은 단지 높은 학점을 얻기 위해 교양을 희생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이들은 케이티 페리(Katie Perry)의 신곡부터 시작해서, 미국의 유명한 팝 가수들의 근황을 거쳐 그들이 가진 자산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친구들은 최신 음악을 모두 섭렵하는게 다가 아니었다. 대학생 수준에서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 목록도 꿰차고 있었고, 세계 유명 여행지와 휴양지에 대해서도 여럿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취직해서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때 생각할 수 있을 법한 내용들도 이미 숙지하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일례로, 외국 아이들은 특히 자신의 자산 관리에 관심이 많아 호텔경영학과 친구들은 주식 경험도 풍부하고, 최신 투자 뉴스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디너 테이블에 앉아서는 그런 정보들을 공유했다. 1학년들 전용 식당이라고 해도 무방한 아펠 커먼스(Appel Commons)나 로버트 퍼셀 커뮤니티 센터(RPCC)는 보통 늦게까지 아이들로 북젹였기에 우리는 거의 2시간동안 상식에 관한 대화부터 취업 후 개인자산관리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해 나갔다. 특히 호텔경영학과를 비롯한 경상계열 아이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빠짐없는 주제가 바로 인턴쉽과 대학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블룸버그의 고객 서비스 분야 인턴쉽 제의가 오거나 JP 모건에서 부동산 부서에서 인턴 제의가 와도 난 뉴욕에 있는 왈도프 에스토리아(Waldorf Astoria)에서 일할꺼야. 일단 실무 경험을 쌓고 나중에 부동산을 공부해서 호텔 부동산 컨설팅 쪽으로 갈꺼거든.”

 

일단 대학원은 코넬의 MBA-MPS in RE (경영학 석사와 부동산학 석사를 3년만에 수강하는 프로그램)로 갈꺼야. 하지만 주위에서는 전통적인 MMH(여름에서 이듬해 봄학기까지 3학기로 이루어진 호텔경영학 석사과정)를 코넬에서 수강하고 직장에서 일한 다음에 스폰서를 받아 하버드 혹은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 진학하는게 출세의 지름길이라고 하지. 그 말도 일리가 있어.”

 

호텔에서 성공하고 싶으면, 바로 호텔에 입사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야. 차라리 컨설팅 펌이나, 투자은행에 가서 분석능력과 기획능력을 키우고, 탄탄한 금융 지식을 바탕으로 경영대학원에 진학해서 커리어 채인지 과정을 통해 백오피스에서 최고마케팅경영자나 최고재무경영자가 된 다음에 부사장, 그리고 사장으로 올라가는 편이 훨씬 낫지.”

 

물론, 그들의 답이 모두 정답은 아니었다. 각자의 기존인맥, 경험, 지식, 그리고 꿈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이 답이 아니었기에 나는 더 흥미진진하게 이야기에 스며들 수 있었다. 줄곧 호텔학교에서는 순수 호텔 계열, 즉 프런트와 같이 실무부서를 거쳐 젊은 나이에 부총지배인의 자리에 올라 나중에 다른 호텔에 총지배인으로 스카우트 되는 등 고객 접선에 서서 호텔을 운영하는 힘을 가지는 것을 성공이라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는 반면, 유턴(U-Turn) 계열, 즉 실무 부서에서 부사장으로 올라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안정적으로 재무팀이나 전략기획실, 그리고 마케팅 부서 등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직장에서 젊음을 보내고, 나중에 최고재무관리자나 최고운영관리자 등이 되서 성과를 보이고 부사장 이상으로 승진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주장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물론 각각의 장단점은 매우 극명하게 갈린다. 하지만 그런 정보들 모두는 미래 호텔리어로써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정보였다. 이렇게 준비된 친구들 옆에 앉아 있는 것 만으로도 그냥 호텔학교가 아닌 톱 호텔학교에 진학했다는 사실에 우린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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