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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고등학교인 민족사관고, 1984년부터 지금까지 정상을 지킨 대원외고, 자립형 사립고로 전환된 외대부속외고, 이 세 명문고는 어쩌면 최고의 호텔리어가 되고싶은 중학생들과 그 학부모들이 가장 선망하는 유학반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다. 이 학교들 외에도 여전히 건재한 한영외고, 강서구의 강호 명덕외고, 전통 있는 보딩스쿨 대일외고, 명지외고 시절의 명성 그대로의 경기외고, 경기도의 강호 고양외고와 여전한 명문 서울외고도 국제반 커리큘럼에서 아성을 뽐내고 있다. 청심국제고 또한 국제반의 실적 면에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위의 고등학교들이 명문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탄탄한 재단의 지원, 훌륭한 강사진, 우수한 학생들, 좋은 자연환경 및 시설 등을 포함한 무수한 이유가 있겠지만, 영미권 학교들과는 다른 보수적인 학풍을 지녔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보수적인 학풍으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계열로 유명한 민족사관고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1998년부터 20년에 달하는 세월 동안 최고의 유학반이라는 타이틀을 지켜온 민사고는 설립연도인 1994년 이래 유교 사상을 받든 조선시대의 서당을 연상케 하는 보수적인 학풍을 유지하고 있다. 이 탓에 민족사관고는 이성교제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데, 이를 지나치게 어겼다가 퇴학당한 학생도 있다고 한다. 이 규칙은 심지어는 2004년 내가 참가한 리더쉽 캠프인 GLPS에서도 적용되었다. 고작 중학교 1학년이었던 우리 중에서도 욕망을 못 이겨 여자 기숙사에 있는 연인과 담소를 나누기 위해 잠입했다가 기숙사 사감에게 걸려 눈물, 콧물 쏙 빠지도록 혼난 남정네들이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성장기 어린이나 다름없는 중학생들도 연애충동을 느끼는데 이팔청춘인 고등학교 남녀들은 오죽하겠는가.

 

내가 졸업한 청심국제고 역시 민족사관고 못지 않게 이성 교제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물론 그걸 알면서도 연애를 몰래 즐기는 학우들은 꾸준히 있었다. 그러나 독자들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10대 후반이면 할건 다 해야 직성이 풀리게 된다. 단 둘이 있을 수 있는 공부방이나 음악실, 탈의실, 도서실 테이블 아래 등이 적합한 장소인데, 선생님들께 발각된 학생들 중에는 퇴학이나 다름 없는 전학 권고 처분을 받은 녀석들도 있었다. 물론 당연한 결과겠지만, 몰래 연애를 할 각오를 하고 교정에서 데이트를 하는 녀석들의 성적은 보통 저조했다. 국제반 선생님들의 평가는 연애하다 적발된 학생들은 그들의 잠재력 만큼이나 좋은 대학을 못 갔다는 평가가 대다수였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지만 내가 아는 국제반 선후배들, 그리고 동기들 중 열애중 명문대에 합격한 학생들은 극히 일부였다.

 

코넬대학교에 입학한 나는 겨울에 남자 선배가 여자 후배의 가방만 들어주어도 선생님들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던 한국의 고등학교들을 나온 친구들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교풍을 가진 미국의 명문 사립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었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일 수도 있지만, 내 경험상 조기유학생들과 특목고 출신들의 생활 방식과 배턴은 확연하게 달랐다는건 확실하다. 미국에서 10대 후반을 보낸 학생들은 북미의 자유로운 문화와, 엄격하되 학생들의 주관을 존중하는 고교 학풍, 그리고 다양성에 익숙했다.

 

그들은 편안하고 안락한 아파트를 원했다. 많은 남학생들은 애연가(愛煙家)였고, 자가용을 보유하고 있었다. 여학생들 또한 쇼핑을 즐겼고, 스타벅스를 자주 방문했으며, 주말에는 줄곧 번화가인 커먼스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곤 했다. 형제 클럽과 자매 클럽에 가입하는 학생들도 다수 있었고, 유명한 교내 동아리들에서 활동하는 학우들의 수도 상당했다. 또한 특이하게도 남녀에 상관 없이 저녁 이후에 항상 도서관을 방문해서 새벽까지 있다 가곤 하였다. 보통 쿠키나 과자, 치킨, 베이글 등의 음식과 스무디, 커피, 주스 등의 음료를 동반하여 탁 트인 홀이 아닌 아기자기한 규모의 공부방(Study Room)에서 학업을 진행했는데, 종종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밖으로 들리는 것으로 보아 타이트하게 공부를 하고 일찍 가는 것보다는 사교와 학습의 균형을 맞추는 것 같았다.

 

또한, 그들은 술자리를 즐기곤 했다. 단순히 값비싼 술로 치장된 방탕한 파티가 아니라, 절제 되고 생산적인 만남의 기회로써 말이다. 이를 하우스 파티(House Party)라고 하는데, 한국 학생들이 다수 거주하는 아파트들에서 열리는 하우스 파티에 자주 참가하는 이들의 경우,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한국 유학생들을 아는 사례도 비일비재 하였다.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에 도서관에 가 보면 유난히 한국 학생들이 평소보다 적은데, 이는 80%가 술자리에 참가했기 때문이고, 20%가 종교 활동 중이라고 생각하면 큰 문제가 없을 정도이다.

 

특목고 출신 학생들은 차라리 교포 2, 3세들과 비슷했던것 같다. 유학생들끼리 놀기보다는 대학 커뮤니티에 훨씬 더 많은 참여를 하고, 다른 인종이나 다른 국적의 아이들과 더 잘 어울리곤 했다. 또한 한인동포교회에도 조기유학생들보다 특목고 졸업생들이나 교포생들이 참여 비율이 더 높았다. 교포 아이들은 친구 사귀기에 적극적인 학생들이 많아, 내게 친절하게 대해준 친구들이 여럿 있어서 영어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됬다. 또한, 아무래도 좁은 2, 3세 커뮤니티 탓인지 끈끈함이 있어 그들과 한번 친해지면 의외로 순수한 마음에 매료되어 계속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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