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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service The one who progresses (奉仕의 人生을 行하는 者가 進步한다).

 

호텔학교의 본관인 스태틀러 홀 2층에 걸려 있는 말이다하나님께서 도우신건지, 인생의 복을 한꺼번에 쓴건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 위압감에 일찍이 겁먹은 코넬대학교의 신입생이 되어 나는 인천공항 발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고 있었다. 나는 아쉬움 가득한 가족들의 배웅을 뒤로하고, 비행기 탑승으로부터 장장 14시간이 지나, 역동적이고 활기찬 뉴욕 시내를 굽어보는 존 F. 케네디 공항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나는 택시를 타고 캠퍼스 직행 버스의 정류장이 있는 맨하탄 한복판의 코넬 동문클럽으로 향했다. 거대한 8바퀴짜리 비즈니스 버스는 거의 4시간 반 동안 뉴욕 북동부를 달렸고, 초록이 만연한 고풍스러운 도시 이타카에 위치한 교정으로 나를 인도했다

 

“내가 받은 합격 통지서가 정말 나와 어울리나?

“세계적인 경영학 영재들의 전쟁터에서 나는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코넬 북 캠퍼스의 로버트 퍼셀 학생회관 옆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에 발을 디디자 마자 여독의 피곤함보다는 이런 걱정이 앞섰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한편 언론과 방송에서 수도 없이 회자된 호텔학교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던 나는 코넬에서 내가 얻을 지식과 경험에 대해 형언할 수 없는 환상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비리그에서 가장 큰 기숙사인 클라라 딕슨 홀 3층에 위치한 내 방으로 들어섰다. 3559호였다.

 

짐 정리를 얼렁뚱땅 마친 나는 고등학교 시절의 오랜 친구인 17.3인치 노트북을 켜고 서둘러 목표를 정했으며, 출발선을 그렸다. 고등학교에서 그랬던 것처럼 코넬대에서도 정상을 차지하고 싶으면 누구보다도 높이 올라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2014 05 25 10학번의 학부 졸업식 때, 나는 내가 쫓는 대상이 꿈이 아니라 이력서였고,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 남들이 보기에 멋진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치열했으며, 고독한 싸움을 멈추지 않았을까?

 

코넬에서 가장 유명한 학과이자 로잔스쿨과 함께 세계 1위를 다투는 호텔경영학과에 재학하며 경험했던 학문적 도전에 나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한다. 최근 서비스 산업의 현상을 어렵지 않은 수식으로 술술 풀어내는 미시경제학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있노라면 절로 탄성이 나왔고,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수업에 응용한 마케팅 교수님의 수업에서는 나도 모르게 흥분했다. 신문에서 화제가 되었던 항공사의 세금 문제, 평소 흥미로웠던 뉴욕의 호텔들이 지닌 시설적 특징 등 신선한 주제에 대해 연구하고 지도 교수와 1:1로 의견을 주고 받으며 논문을 다듬는 과정은 마치 내가 어느 흥미진진한 모험을 하는 것처럼 짜릿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무조건적인 상쾌함 속에서 문득 내가 뚜렷한 돌진의 방향 없이 4년간의 학부 생활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해준 계기는 다름 아닌 코넬대에서 만난 친구들, 특히 나와 같은 전공을 가진 호텔경영학과 친구들과의 만남이었다. 부유한 사립단과대인 호텔스쿨에는 세계적인 부호들의 자녀들과 패션 모델들이 즐비한 호텔스쿨에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 출신인 나는 마치 양반들의 서당에 사회배려차 합격시킨 평민에 가까웠다. 홍콩의 재벌가 자제들이 1층 라운지에 위치한 테이블에 모여 앉아 자기 가족 회사들의 주식 동향과 자신의 지분량 그리고 향후 투자 계획 등을 토론하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있는 것은 마치 어느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았다. 다른 아이비리그 간 풋볼 경기가 있는 날에 열리는 동문 방문의 날(Homecoming Day)엔 집안 대대로 우리 학과를 나와 증조할아버지부터 4대가 호텔스쿨의 졸업생인 백인 친구들의 가문도 있었고, 미국 전역에 호텔 체인을 소유한 인도인 친구의 아버지가 레스토랑 경영 수업을 방문해 우리들과 같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고민했다.

 

한국계 학생들의 대부분은 미국 사립고등학교 출신의 부유한 가정의 자제들이었고, 누구나 알 법한 대기업의 자녀들 또한 상당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아파트에서 술자리를 즐기곤 하였는데, 술을 즐기며 노는 유흥의 목적이다기보다는 그들만의 사회화 과정에 가까웠다. 술잔을 서로에게 건네는 동안 그들은 일상 생활, 시사, 졸업 후 계획, 여름 인턴쉽, 그리고 학과 수업에 관한 다채로운 고급 정보를 교환했다. 이런 만남들은 대기업 전략기획실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원들과 나눈 대화라고 해도 무색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다.

 

물론, 그런 자리에서 본 한국계 친구들 중엔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방탕한 부유층 자제들도 분명 있었다. ()적 자유를 절제하지 못하는 유학생 남녀들도 더러 있고, 대학 생활을 컴퓨터 앞에서 허비하는 게임 중독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 일부분일 뿐이다. 내가 만난 대다수의 한인 유학생들은 겸손하고, 인정이 많으며 인맥 관리를 무척 중요시했다. 지금까지도 나와 만나 식사를 하는 선후배들도 있고, SNS를 통해 연락하면 기꺼이 자기 시간을 쪼게 나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이 친구들은 곧 인연이 되었고, 인연은 내게 동기를 부여했다. 코넬리언들은 이미 보유한 풍요로움에 안주하지 않고, 다양한 가치와 신념을 가졌다. 그라고 그것들은 저절로 코넬인들을 자신의 꿈으로 향하게 하였다. 그렇기에, 내가 아이비리그에서 배워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였고, 수단이 아닌 목적이었다. 그렇게 뼛속까지 아이비리거의 정신으로 무장했을때 나는 더 치열해질 수 있었다.

 

사실, 이 블로그를 운영한다는 결심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모교와 타교의 호텔경영학과 동문들에게 오만하다고 비난 받을 걸 뻔히 알면서도 나는 뻔뻔하게도 키보드 앞에 앉아 있다. 그 이유는 오직 호텔경영학과를 지원하는 모교와 타교 고교생 후배들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재학 시절, 미국에 사시던 큰고모께서 아이비리그 투어를 시켜주셨을때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눈에는 호텔 학교에 대한 동경의 시선이 녹아있었다.

 

가장 아름다운 10대 후반의 나이에 자신의 미래에 도전하는 그들이 나는 귀여우면서도 대견하다. 그들이 그토록 떠나고 싶어하는 여정을 조금 일찍 나선 선배로써 이런 저런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언제나 감사하다. 한참의 시간이 걸려도 나는 반드시 조언을 하기로 스스로 마음먹었고, 긴 대화가 오간 후에 나는 언제나 격려의 말을 후배들에게 건네곤 한다. 후배들은 내가 헬스장에 있을 때 많이 문자를 하곤 했는데, 내가 체육관에 열심히 운동을 할 시간에 한국은 여유로운 아침이기 때문일 것이다. 땀범벅이 된 나는 축축한 손으로 자주 들어오는 다음 질문에 열심히 답장을 했다.

 

“코넬대 호경과 너무 가고 싶어요ㅠ 오빠 어떻게 들어가셨어요? 넘 부러워요ㅜ”

 

물론, 나는 그 질문에 답하기 전, 다시 그녀들에게 묻곤 한다. 왜 우리 학교여만 하는지 말이다. 그럼 후배들은 엄청 머뭇거리다가 몇 분 후에야 좋은 학교니까.” “US 뉴스 랭킹 1위니까.” 등의 답변을 한다. 그러나 사실, 스위스의 3대 호텔 학교 로잔, 글리옹, 레로쉐는 여전히 건재하고, 미국의 네바다대와 미시건주립대 또한 코넬의 등을 바짝 쫒고 있다. 이 호텔 학교들은 모두 세계적인 명문이다. 또한, 아시아의 강호 홍콩 폴리테크닉 대학교도 유명하고, 한국에서 경희대학교와 세종대학교 또한 경쟁력 있는 선택이다.

 

나는 질문을 조금 바꿔 후배들에게 질문한다. 왜 꼭 코넬 이여야 하는지. 그 이유는 그들이 ‘꿈이 무엇이기에’ 우리 학교를 지원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까지 내 맘에 드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한 후배는 아직 보지 못한 것 같다. 허나 불과 몇 년 전, 나도 그 후배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중학교 시절, 나는 영어학원이 정해준 특목고 순위대로 고등학교에 지원하였었고, 막연히 언론에 회자되는 아이비리그의 명성을 동경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에서 심심치 않게 출시되는 호텔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에 비춰진 화려한 호텔리어들에 대한 환상을 품었다. 나는 이 두 가지 이유 만으로 무작정 코넬대학교에 지원하였다.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이야기에 분명한 초안조차 없이 무작정 써 내려간 스토리가 베스트셀러가 되기를 동경했으니까. 물론 당장 이렇게 화려한 욕심 때문에 노력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인생 저편까지 치열할 수는 없다.

 

이 책을 쓴 이유는 누군가가 바로 나처럼, 호텔경영학과에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화려해 보인다는 이유로 목적과 지혜 없는 돌진으로 꽃다운 청춘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에서다. 부디 이 책이 독자들의 미래를 완성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학교 건물에 붙어있는 말처럼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진보한다면 빛나는 미래에 다가서는 일이 그리 어렵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2014 05 28, 뉴욕발 인천공항행 기내에서.


글쓴이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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