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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의 편견과는 다르게, 코넬의 고층 아파트들에서 열리는 한국의 MT나 신입생 OT에서 벌어지는, 흔히 한국에서 가혹하다고 비난을 받는 술자리와는 많이 다르다. 내가 신입생 때만 해도 호텔경영학과 유학생 선배들이 많아서 다소 격렬한(?) 술게임과 그리고 뚜렷한 학년간 위계질서가 존재했다. 물론, 나는 술을 워낙 못 마시기에 몸이 많이 힘들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3학년이 되고, 후배들도 외국에서 오래 살아 한국 문화를 잘 모르는 친구들이 많이 와서, 내 한 학년 선배들과 동기들은 선후배보다는 형, 누나처럼 편하게 대해 주자고 입을 모아서 예전보다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 갔다.

 

예전 호텔학교 선배님들께서 이 이야기를 들으면 경악하시겠지만, 내가 고학년이 된 후 부터는 한국적 위계질서 뿐 아니라 술자리의 알콜 농도 또한 현저하게 낮아져서 컴퓨터공학과나 산업공학과에 재학하던 지인들은 “호텔스쿨 술자리는 과자 파티”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나무위키나, 디씨갤러리, 오늘의 유머와 같이 누리꾼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호텔경영학과 학생들이 여는 파티가 악명높다는 말이 많은데 슬프게도 그 말은 코넬에서 만큼은 예전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내가 이렇게 만든 건 절대 아니지만, 술 게임을 위스키나 보드카가 아닌 맥주와 레드와인으로 했으니 사실 과자파티라는 소리를 들어도 싸다. 하지만 여전히 하우스파티의 상징인 빨간색, 파란색 플라스틱 컵을 손에 들고, 우리는 거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아직 가까워지지 못했던 과 선후배들과 좋은 정보를 나누곤 하였다. 2학년 때는 어디 살아야 하는지, 수업은 어떤 과목을 들어야 점수가 잘 나오는지, 인턴쉽 정보는 어디서 찾는지에 대한 다채로운 고급 정보를 우리들은 공유해 왔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해마다 호텔경영학과의 한국인 여학생들 수는 남학생들 수를 절대적으로 능가했다. 독자분들이 관심있어 할 소재인지는 모르겠지만, 해마다 호텔 스쿨의 한국인 여학생들은 매 학년의 여신(女神) 타이틀을 독식했다. 예외적으로, 2011년 호텔경영학과 신입생인 5명의 한국인 유학생들 전부가 남자였다. 술자리에서 미인들이 즐비한 호텔 학교 누나들로 둘러싸인 그들은 양 볼이 발그레해질 정도로 알콜이 들어가니 코넬 오길 잘했다며 속마음을 털어놓곤 했다. 물론, 그 의견에는 나도 이견이 없다. 내가 간단하게 저가 중국 요리로 혼자 간단히 점심을 때우려고 할 때 나를 끌고 근처의 고급 중화요리 전문점으로 데려가서 맛있는 런치 스페셜을 사주신 누나들도 있었으니까. 이렇게 돌아보니 내가 남자라 고마움의 표시에 서투르고, 술에 약해서 술자리에서마다 다소 무례했을텐데 이 글을 빌려서라도 내가 뵜던 모든 호텔 학교 선배들께 나를 잘 챙겨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을 전하고 싶다.

 

한편, 여초학과인 호텔경영학과에서 남학생인 내가 언제나 낙원에서 살았던 것은 아니다. 여자후배들이 콧소리 섞인 애교를 부리며 같이 밥먹자고 할 때마다 마음이 약한 나는 레스토랑에 끌려갔다. 당시 순수하고 천진했던 나는 왜 계산할 때 즈음 되면 여자아이들이 갑자기 화장실에 가거나, 왜 먼저 바람을 쐬러 간다고 하는지 궁금했었다. 또한, 호텔 스쿨의 여자 후배들이 숙제 제출 시기마다 통계학이나 부동산학 등 어려운 과목의 조교를 하는 남자 선배들을 유괴하곤 했다. 다행히 나는 공부를 못했던 탓에 그러한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지만 지금도 그걸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아무튼, 이런 만남들에서 오고 가는 대화들 때문인지 한국의 코넬대 호텔경영학과 동문회(Cornell Hotel Society Korea Chapter)는 작은 규모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탄탄하고 끈끈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선배들은 후배들을 언제나 당겨주었고, 후배들은 훗날 선배가 되어 그 뒷사람들의 사다리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하나 하나 싸인 한국인들만의 정은 퇴적층이 아니라 화성암벽처럼 단단했고, 치밀했다. 그러나 사실 학과 간 술자리는 전체 술자리 수의 10% 정도라고 보면 된다. 다시 말해서, 대다수의 술자리는 단순히 같은 과 학생들로만 이뤄지지 않고, 다양한 동기 및 선후배들과 어우러지게 해준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인맥을 형성하게 된다. 이 거대한 인맥 형성의 장()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욱 자세히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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